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임스 2세 (문단 편집) == 평가 == 제임스 2세는 후세에 윤색된 이미지와는 달리 [[폭군]]이나 악인이 아니었다. 그의 통치는 분명 아버지 찰스 1세처럼 전제적인 면도 몇몇은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권위주의적인 면이 다분히 있고 엄격한 규율가였지만 참회하는 죄인들에게 관대했고 자신의 백성들에게 선의를 가지고 통치를 하려고 했기에 전체적으로 보면 훌륭한 통치자였다. 실제로 그가 적극적으로 왕위를 되찾으려 했다면 지지자들이 적지 않았기에 윌리엄 3세나 메리 2세에게 다시 왕위를 빼앗을 가능성조차 있었지만 그는 가족들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그 가족들에게 배신당했기에 모든 기력을 잃고 포기해버렸다는 것이 현대 역사가들의 견해이다. 특히 그는 종교문제에 있어서 흔히 알려져 있듯이 '교황주의적 폭군'도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종교적인 관용을 원했고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관용'을 공식 정치석상의 의제로 올린 첫번째 군주였다. 정작 [[윌리엄 3세]]의 관련법이 제임스 2세의 관용법안보다 크게 후퇴한 것이었다. 현대 역사계에서 그는 '''정치적 기술이 부족하고 종교적인 믿음을 이성과 설득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여긴 어리석은 왕'''이라는 평가와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계몽군주'''라는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사실 둘 다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는 폭군이 아니었고 능력이 있었으며 그의 종교 관용 정책은 인간보편적인 관점에서 대단히 훌륭한 목표를 지향했으며 군인으로서 잉글랜드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스킬이 많이 부족했고 소통이나 인간관계에 결점이 있었으며 그의 몰락이 여기서 기인했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다. 상비군 양성은 그의 결정적인 실책이라고 평가되는데 상비군 양성의 진위여부를 의심할 필요는 있다. 정말 상비군을 양성하려면 편제 및 장교가 정리되어야 하는데, 그렇기는 커녕 아예 규모조차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의회에 반란 대비를 명분으로 한 상비군 예산을 요청하였던 적은 있다. 물론 거부당했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